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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S NEWS]

박영준 회장, 이원율 사무총장

해병대사관총동문회 신년교례회 참석

  (사)해군OCS장교중앙회 박영준 회장은 1월9일 저녁 6시30분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해병대사관총동문회 2020년 신년교례회에 참석했다.

  해병대사관총동문회(회장, 하태수)는 신년교례회와 함께 임관 60주년 영예장헌정식을 가졌다.올해 헌정대상 기수는 해병대사관 제28기(1960년 임관)이며, 헌정기수는 해병대사관 제75기 동기이다.

  헌정기수인 75기들은 영예장 헌정사에서 "해병대장교로서 해병대와 함께 60주년 세월을 넘어 이제 줄 수를 바라보시는 대선배님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함께 축하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본회에서는 박영준 회장과 함께 이원율 사무총장, 손성기 행사국장이 참석했다.

(사)해군OCS장교중앙회

2020 신년 임원회의 개최 공고

(사진) 2019 하반기 임원회의후 단체촬영

[임원회의 개최 공고]

(사)해군OCS장교중앙회 2020년 신년 (확대)임원회의를 아래와 같이 개최하오니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일시 : 2020. 2. 27 (목) 18:30~21:00

2. 장소 : 호텔 인나인 B1층 스텔라

(봉은사역 3번 출구, 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618)

3. 안건 :

  1) 2019년 사업결과 및 2020년 사업계획 보고

  2) OCS발전기금 현황

  3) 조직 활성화 및 재정 안정화 방안 토의

  4) 기타

4. 참석대상

- 중앙회 임원 :

  명예회장, 감사, 고문, 자문위원, 부회장

- 기수대표

- 지회 및 동호회 회장

- 중앙회 집행부

5. 예약 및 준비 관계로 참석여부를 2월 20일 (목)까지 단톡방 댓글 또는 사무총장 이원율(010-6231-1087), 사무국장 송태호(010-6304-0213)에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해군OCS장교중앙회 회장 박영준

[OCS NEWS]

(사)해군OCS장교중앙회 박영준 회장

2020 해군정책설명회 참석

  (사)해군OCS장교중앙회 박영준 회장은 1월9일 서울 해군호텔에서 열린 경인지역 해군해병 예비역 대상 2020 해군정책설명회에 참석했다.

  심승섭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린 2020 해군정책설명회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해군·해병대의 노력과 국방개혁 2.0 해군 추진계획, 스마트 해군 추진 현황 등 올해 해군 주요 정책을 설명하고 예비역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마련됐다.

 

 (사)해군OCS장교중앙회에서는 박영준 회장과 함께 김동건 명예회장, 조장현 고문,윤현범 前 부회장, 이원율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OCS NEWS]

박영준 회장, 이원율 사무총장

해병대사관총동문회 신년교례회 참석

  (사)해군OCS장교중앙회 박영준 회장은 1월9일 저녁 6시30분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해병대사관총동문회 2020년 신년교례회에 참석했다.

  해병대사관총동문회(회장, 하태수)는 신년교례회와 함께 임관 60주년 영예장헌정식을 가졌다.올해 헌정대상 기수는 해병대사관 제28기(1960년 임관)이며, 헌정기수는 해병대사관 제75기 동기이다.

  헌정기수인 75기들은 영예장 헌정사에서 "해병대장교로서 해병대와 함께 60주년 세월을 넘어 이제 줄 수를 바라보시는 대선배님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함께 축하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본회에서는 박영준 회장과 함께 이원율 사무총장, 손성기 행사국장이 참석했다.

[OCS NEWS]

새해, 해군잠수함사령부 의료봉사

(사)해군OCS장교중앙회 사회봉사단

  (사)해군OCS장교중앙회 사회봉사단(단장, 48기 김국호)은 2020년 새해 첫 봉사활동으로 1월9일 해군잠수함사령부를 찾았다.

  OCS사회봉사단은 격월로 해군잠수함사령부 장병및 가족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실시해 오고 있는데, 올해 첫번째로 방문한 것이다.

  사회봉사단은 2017년 9월 해군 2함대 23고속전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후에는 2018년 6월까지 매달 봉사활동 실시했고, 이때부터 잠수함사령부도 2함대와 격월로 방문해 의료봉사활동을 실시해 왔다. 

  작년 1월에는 해군잠수함사령부 909교육전대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김국호 단장은 해군에 매월 의료봉사활동을 실시하면서도 OCS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한편 산악회 등 OCS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기여하는 등 해군과 OCS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OCS NEWS]

2020 신년회 갖고 명예구보준비 점검

(사)해군OCS장교중앙회 명예구보지원단

  (사)해군OCS장교중앙회 명예구보지원단(단장, 69기 박만화)은 1월 11일 12시 30분부터 청계산 원터마을 애마가든에서 신년회를 가졌다.

  당일 오후 2시부터 실시되는 산악회 신년산행에 앞서  회의를 겸한 신년회를 갖은 명예구보지원단은 신년회가 끝난 후 해군OCS장교중앙회 카톡방에 아래와 같이 신년회 주요내용을 올렸다.

★신년회 주요 내용

•박만화 명예구보지원단장님 신년인사

•사관후보생 교육과정 중 "해군사"에 "임병래 중위" 관련 시간 별도 편성 예정

•임병래 중위 관련 교재 편찬 중간보고>>>최승원(63) 선배님 편찬중>>>2020.2월 중 김국호 고문님 김동건 명예회장님 등 감수예정>>>2020.3월 초 해사 사관후보생대에 전달 예정

•명예구보지원 전국적인 활성화를 위한 각 지국 홍보활동 강화 등

♥신년교례회시 오찬은 김재천 고문, 송태호 중앙회 사무국장이 찬조

★참석자(존칭 생략)

이태성(43) 이순헌(50) 박영배(55) 김재천(60) 김국용(62) 박옥현(63) 박만화(69) 윤광호(72) 김진영(79) 이봉우(84) 송태호(84) 김성권(84) 최해욱(92)

[OCS NEWS]

OCS 128기 최종합격자 2월14일(금) 발표 예정

3월 16일(월) 입영식, 6월1일(월) 임관식

  대한민국 해군 사관후보생(OCS) 128기 최종합격자가 2월 14일 오후2시 해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된다. 발표당일 2시부터 해군 홈페이에서 합격자 조회를 클릭하면 합격여부를 알 수 있다.

  최종 합격한 128기 사관후보생들은 3월 16일(월) 진해 해군사관학교(장교교육대)에 입영할 예정이다.

  입영하여 신체검사 불합격 할 경우 퇴소 조치되며, 양성교육후 임관종합평가시 기준성적 미달자는 임관이 불가하다.

임관식은 6월1일(월) 해군사관학교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OCS NEWS]

129기 사관후보생 모집 3월18일부터 4월8일까지

실기시험 4월18일, 필기시험 4월25일

  해군은 해군사관후보생(OCS) 129기를 모집한다.

지원서 접수는 3월18일(수)부터 4월8일(수)까지이다. 실기시험은 4월18일(토)이며, 필기시험은 4월25일(토)이다.

  1차 합격자 발표는 5월12일(화)에 한다. 면접 및 신체검사는 6월1일(월)부터 6월11일(목)까지 실시할 예정이다. 최종합격자 발표는 8월13일(목)에 한다.

  129기 입영은 9월14일(월)이며, 임관은 12월1일(화)에 예정돼 있다.

지원자격은 다음과 같다.

*연령 : 임관일 기준 만 20~27세의 대한민국 남자 및 여자(임산부제외)

단, 5급 공개경쟁 채용시험 합격자(외무, 행정, 법원, 입법고시) 및 박사학위과정 수료자, 공인회계사 자격 획득자로서 실무수습 1년 종료 후 등록을 필한 자 만 29세. 예비역의 경우 현역으로 복무한 기간에 따라 만 30세까지 지원 가능 2년 이상 복무 후 전역한 제대군인 : 만 30세까지 1년 이상 2년 미만 복무 후 전역한 제대군인 : 만 29세까지 1년 미만 복무 후 전역한 제대군인 : 만 28세까지

*학력 : 4년제 대학교 졸업자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력 소지(예정)자

군인사법 제 10조 2항 "임용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자(이중국적자 지원 불가) 제 10조 (결격사유 등)

① 장교, 준사관 및 부사관은 사상이 건전하고 품행이 단정하며 체력이 강건한 사람 중에서 임용한다.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장교, 준사관 및 부사관으로 임용될 수 없다.   

1.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       

1의2. 대한민국 국적과 외국 국적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    2.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3.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으로서 복권되지 아니한 사람   

4.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   

5.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거나 그 유예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   

6. 자격정지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사람   

7. 탄핵이나 징계에 의하여 파면되거나 해임처분을 받은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   

8. 법률에 따라 자격이 정지되거나 상실된 사람

[OCS NEWS]

OCS발전기금 163,505,000원 출연

2020년 01월 31일 현재

(사)해군OCS장교중앙회 발전위원회(위원장, 55기 김동건 명예회장)에서는 2020년 01월 31일 현재 OCS발전기금 출연금액은 163,505,000원이라고 발표했다.

  1월에는 70기 주영화 동문(미국 거주) 50만원, 62기 안수길 동문 10만원, 116기  윤승희 동문 10만원을 출연했다.

[개인]

03 송진환 10 만원

48 조우철 명예회장 300 만원

52 이순형 1,000 만원

53 정도언 고문 100 만원

55 김동건 명예회장 1,000 만원

55 고석구 10 만원

55 박영배 10 만원

55 심형보 20 만원

55 염용건 100 만원

56 조장현 고문 500 만원

60 김병일 명예회장 500 만원

62 안수길 10 만원

63 김종진 명예회장 1,000 만원

65 이규형 100 만원

65 황경남 100 만원

66 박정우 자문위원 50 만원

66 박명준 100 만원

69 박만화 100 만원

70 심윤조 명예회장 1,000 만원

70 이범영 10 만원

70 김명준 20 만원

70 박영준 회장 1,000 만원

70 주영화 50 만원

73 이세일 부회장 100만원

73 장홍균 부회장 100만원

75 최홍윤 부회장 500만원

79 김 경 부회장 300만원

80 김   태 10 만원

80 오영달 50 만원

80 이동영 10 만원

80 이종석 500 만원

80 황   욱 10 만원

82 신주원 10 만원

82 이동춘 부회장 50 만원

83 김칠용 30 만원

84 이재남 10 만원

84 임중재 20 만원

84 김명현 10 만원

84 전주민 부회장 500 만원

85 김선기 10 만원

85 조성민 부회장 20 만원

86 박범진 10 만원

86 유승근 부회장 10 만원

86 김완수 10 만원

87 박수홍 10 만원

87 박일수 10 만원

88 김판섭 100 만원

88 남광우 10 만원

88 박상규 10 만원

88 박주한 20 만원

88 손주영 100 만원

88 양기표 10 만원

88 이상열 20 만원

92 류재혁 10 만원

92 박충순 10 만원

92 이용규 10 만원

93 조건우 10 만원

93 김영배 93 만원

94 손성기 20 만원

95 김갑진 10 만원

95 안남수 10 만원

95 안중근 10 만원

95 최문영 50 만원

100 윤여미 10 만원

106 김연미 10 만원

116 윤승희 10 만원

[동기회]

48 동기회 300 만원

55 동기회 100 만원

63 동기회 1,000 만원

65 동기회 1,000 만원

66 동기회 500 만원

70 동기회 1,500 만원

79 동기회 100 만원

80 동기회 1,500 만원

85 동기회 100 만원

[지회]

대구경북지회 137.5 만원

명동광화문지회 200 만원

(합계 163,505,000원 / 2020.01.31.현재)

[인사동정]

70기 박동혁 前 대우조선해양 부사장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지속 가능성" 신문기고

   70기 동기회 회장인 박동혁 전 대우조선해양 부사장이 국제신문에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지속 가능성" 제목으로 기고했다.

“1592년 3월 5일, 좌의정 유성룡이 편지와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라는 책을 보내왔다. 이 책을 보니 수전, 육전과 화공법 등에 관한 전술을 일일이 설명했는데, 참으로 만고에 뛰어난 이론이다.” 임진왜란 발발 달포 전 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다. 유성룡이 병법서를 보냈고, 그 전술을 읽고 만고에 뛰어나다고 즉각 평가한 점이 눈에 띈다. 나의 장점을 적의 단점에 더하는 지기(知己)지피(知彼)와 병법 연구, 훈련은 연전연승의 핵심이었다. 

  조선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저성장 기조와 세계시장 전망에 대한 회의적 측면, 환경 규제와 에너지 혁신, 국제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과 기대감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 조선산업 생태계마저 훼손돼 시장과 경쟁구도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다. 

  생태계의 지속성은 적정규모 유지와 다양성에 달렸다. 환경 변화에 대응해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의 쏠림과 과잉 현상을 견제하는 자기조절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유형·무형 구성요소의 상호작용으로 다양한 협력 형태와 방어시스템을 형성해 생태계 내부로 던져진 위험을 극복해야 한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둘러싼 환경과 자연의 법칙은 결코 인자롭지 않다. 적자생존은 냉엄한 기준으로 개체들의 삶과 죽음을 판가름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산업 생태계를 구축했지만 내부 순환은 원활하지 못했다. 건강·안정성·균형을 유지하고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려면, 혁신을 통한 경쟁력으로 발전 에너지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은 지속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한계기업은 도태되어야 한다. 적자생존의 원칙이며 생태계가 가진 자정 능력이다.

  현재 국내 대형 조선 3사는 구조조정과 인수합병과정의 여파 속에도 모자란 일감 확보를 위해 박차를 가하면서 미래를 위한 기술 개발과 협력 체계 준비에 힘을 쏟고 있지만, 중소 조선소들은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시장 상황은 기대와 관망, L자형 침체에 대한 우려가 혼재하는 가운데, 기술혁명의 우듬지가 어디를 향할 것인지, 시장 니즈의 봇물은 어디서부터 터질 것인지, 돌아가는 룰렛 테이블의 주사위를 지켜보는 듯한 긴장감이 팽배하다. 

  조선산업도 4차산업 기술변혁의 태풍권 안에 들어선 형국이다. EU 및 한·중·일 조선소와 기자재업체, IT 업체, 물류업체 등은 다양한 협업을 통해 기술 혁신과 변화의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한 무한경쟁에 돌입해 있다. 그 영역은 다양하다. LNG운반, LNG벙커링, LNG추진선, 전기추진선, 무인자율운항 목표의 스마트선박과 운영시스템,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기반의 스마트조선소, 북극항로의 Arctic Class LNG운반선, Container(컨테이너) 선박 개발, 환경규제 극복과 선박추진에너지기술 최적화, 4차 산업 기반의 선박기자재 등이다.  

  기술 변혁과 시장 변화가 맞아떨어지기까지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시기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속성과 생명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며 부동의 동인을 깨닫는 것이다.

  바로, 적정규모와 다양성 유지, 끊임없는 에너지 대사, 항상성, 자극에 대한 반응, 적응력, 치유력이다. 조선산업 생태계의 속성과 치유 방법을 잘 아는 전문 의사가 필요한 때이다. 

  기술은 필요한 현장에서 가치를 발할 때 인정받고 경제성을 가지며, 혁신과 발전 동력을 얻는다. 기술 보유자끼리의 협업은 공급자의 시각이라 실패하기 십상이다. 기술 수요자와 함께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고 개선하고 혁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조선산업은 자본 기술 노동 집약산업이며, 축적의 힘이 절대적이면서도, 동일한 반복을 허락하지 않는 복잡성과 통합의 기술이 핵심이다. 미래의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조선기술인력, 사람이 중요한 이유다. 조선업 지속성의 관건은 신기술 선도를 위한 인재 양성과 저변의 다양한 기존 기술과 경험이다. 기존 기술시장 심화와 확대를 위해서는 자국 건조의 니즈와 본질을 살핀 후 세계 현장으로 나가 조선 기술의 힘과 가치를 펼치는 데 땀을 할애해야 한다.

  선박 건조의 기초부터 응용기술은 물론, 각양각색 제조문화와 사람들의 관습, 설비와 환경 특성에 맞추는 생산기술의 무형자산을 자국 건조를 원하는 국가의 현지에 뿌리내리고 꽃피울 수 있다면, 가히 2세대에 걸친 조선기술로 우리의 경제영토를 확장하고 상생의 현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강점인 기술과 힘을 상대가 필요한 곳에 쏟아붓는 지기(知己)지피(知彼)의 전술, 병법(영업전략) 연구, 끊임없는 기술 훈련이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 비결이었다. 

(국제신문 1월7일 박동혁 前 대우조선해양 부사장)

[해군소식]

2020 해군정책설명회

심 총장"대한민국 해양안보수호 다짐"

                  (사진)해군, 새해 첫 해상기동훈련 실시_해군제공

 

  해군은 1월 9일 서울 영등포구 해군호텔에서 심승섭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2020년 첫 ‘예비역 정책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번 설명회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해군·해병대의 노력과 국방개혁 2.0 해군 추진계획, 스마트 해군 추진 현황 등 올해 해군 주요 정책을 설명하고 예비역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마련됐다.

설명회에는 해군·해병대 주요 직위자와 역대 해군참모총장·해병대사령관, 해군협회·해사총동창회·해병대전우회중앙회·해군OCS장교중앙회·해병대사관총동문회·2사관학교총동문회·해군동지회·잠수함연맹·UDT/SEAL전우회·SSU전우회·UDU동지회·해군전우회 관계자 등 예비역 260여 명이 참석했다.

심 총장은 이 자리에서 “2020년에도 해군은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고 ‘필승해군·호국충성해병대’ 정신을 이어나가겠다”며 “엄중한 안보환경 속에서도 국민이 믿고 안심할 수 있도록 흔들림 없이 국가안보를 지키고 9·19 군사합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가 정책을 힘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심 총장은 또 “대한민국 해양안보를 수호할 수 있도록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추고 굳건한 한미동맹 아래 다양화된 안보위협과 국방환경에 대비해 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 기반 미래 해군·해병대 건설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방개혁 2.0과 스마트 네이비 등 혁신 정책을 더욱 발전시키고 전투력 극대화와 전승을 보장할 수 있는 부대구조 및 전력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해군은 2020년 정책 추진 방향을 튼튼한 군사대비태세 확립 및 한반도 평화정착 지원, 업무 혁신으로 강하고 정예화된 필승해군 건설, 공정·투명한 부대운영, 국민과 함께하는 포용·소통의 해군문화 정착 구현 등 4가지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해군은 군사대비태세 유지 아래 9·19 군사합의 이행, 굳건한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교류·협력 활성화, 4차 산업혁명 기반 입체 균형전력 확보 등 국방개혁 2.0 사업 추진, 무기체계 첨단화·무인화 등 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 기반 스마트 네이비 구현, 선진병영문화 정착 등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한편, 해군은 이번 서울 설명회를 시작으로 호남(목포)·강원(동해)·영남(부산)·제주(제주)·충청(계룡)지역에서 해군·해병대 예비역 대상 정책설명회를 개최하고, 국방개혁 2.0 추진계획 등 해군 주요 정책을 소개하며 현역과 예비역 간 공감대를 형성해나갈 예정이다.

(국방일보 1월9일 안승회 기자 )

[해군소식]

해군 유투브 콘텐츠 공모전

기획하라 !  2020 해군 유-투브 !

   해군본부 정훈공보실에서 해군 유튜브 콘텐츠 아이디어를 공모한다.『대한민국 해군 유튜브를 기획하라』라는 명칭으로 유튜브 콘텐츠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것이다. 

공모기간은 ’20. 1.20.(월) ~ 2.29.(토)까지 이며, 공모자격은 대한민국 국민(장병 포함)  * 개인 혹은 4명 이내 팀 참가 가능하다. 

공모주제는 해군 관련 자유 주제의 독창적 유튜브 콘텐츠 아이디어(기획안)이다.

1. 내가 경험했던 해군 복무시절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한‘해군 웹드라마 시리즈’

2. 해군 유튜브 1인 크리에이터가 제작해줬으면 하는‘V-log 시리즈’

3. 함정, 병영생활, 모병 등 해군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정보제공 콘텐츠’

4. 해군만의 특별한 문화ㆍ임무ㆍ활동 등을 담은‘해군 특성화 콘텐츠’등

5. 기타, 국민의 시각에서 다양한 해군관련 콘텐츠를 제안하면 된다. 

응모형식은 한글 문서, 파워포인트(PPT/SHOW), 디자인(AI/PSD), 만화, 영상물 등형식에 제한은 없다. 

응모방법은 출품수는 자율에 맡기며, 출품료는 무료이다. 참가신청서와 기획안 파일(콘텐츠)를 함께 제출해야 된다. 제출은 이메일(navymedia@mnd.go.kr)로 한다.1인 2편 이상을 제출할 경우 참가신청서를 각각 별도로 작성해야 한다. 참가신청서는 해군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시상은 최우수 1명(상금 1백만원) 우수 1명(상금 50만원) 입선 10명(상품 해군홍보물)이다. 발표는 3월중순 해군 홈페이지와 해군SNS를 통해 발표할 예정이다. 

유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제출작품은 타공모전 미수상 작품으로 저작재산권 침해로 인정되는 작품은 제외된다.(시상 이후에도 관련 사실 인지 시 수상 취소, 상금 무효처리)

2. 제출작품은 반환하지 않으며 입상(입선 이상) 작품, 저작물에 대한 사용권한은 해군에 귀속되며 해군 홍보콘텐츠 제작 등 공익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   (초상권/저작권 등 출품작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은 출품자에 귀속)

3. 출품작 상황에 따라 시상내역이 변경될 수 있다.

[북핵 잠망경]

北 미사일기지 의심 대형 터널

북중 국경지역 공습하기 어려운 지점

   북한이 양강도 북·중 국경에 지하 미사일 기지로 의심되는 대형 터널을 건설한 사실이 포착돼 한·미 당국이 예의 주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사시 한·미 양국의 공습 등을 피하기 위해 북·중 국경에 미사일 기지를 집중 건설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1월29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북·중 국경 지역인 양강도 대홍단군에 폭 10m가량의 대형 터널이 건설된 사실이 미 정찰위성에 포착됐다. 이 터널은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다. 또 북·중 국경 지역에서 불과 6㎞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군 당국은 미사일 기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감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9월 찍힌 구글 어스 사진에는 터널 입구에서 미사일 발사관과 유사한 길이 10여m의 원통형 물체 2개가 포착됐다. 북극성 2형 신형 고체연료 미사일(최대 사거리 2000여㎞)은 길이 12m가량의 원통형 발사관에 탑재돼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2018년 이후 실전 배치 중인 북극성 2형 미사일이 북·중 국경 인근에 배치돼 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는 지난해 9월 보고서를 통해 북·중 국경 인근에 주일 미군 기지 전체를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북극성 2형 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것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북극성 2형 미사일이 북·중 국경 인근에 실전 배치된 사실이 유엔에 의해 공식 확인된 것은 처음이었다. 유사시 한반도에 대규모 미 증원(增援) 전력을 제공하는 주일 미군 기지들에 대한 북한의 기습 타격 능력이 크게 강화된 것이다. 고체연료 미사일은 액체연료 미사일에 비해 기습 발사 능력이 뛰어나다. 당시 유엔 보고서는 북극형 2형이 배치된 기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 다만 노동미사일이 함께 배치된 곳이라고 언급해 양강도 영저동 기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새 미사일 기지로 의심되는 북한의 대형 터널은 영저동 기지에서 동쪽으로 100여㎞ 떨어져 있다. 전문가들은 새 터널이 중국 국경과 불과 6㎞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유사시 한·미 양국군의 전투기 공습은 물론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타격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일보 1월30일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안보 파수꾼]

美 한반도 감시능력 강화

루즈벨트 항모전단 등 태평양지역 배치

 미국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CVN-71) 전단이 모항인 미 샌디에이고를 출발해 인도·태평양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루스벨트호는 동태평양을 관할하는 미 해군 3함대 소속이다. 서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면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으로 하는 미 7함대와 함께 2개 항모전단이 한반도 주변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미국해군연구소(USNI)가 운영하는 USNI 뉴스 등에 따르면, CVN-71을 기함으로 하는 미 해군의 제9항모강습단(TRCSG)은 인도태평양사령부에 배치되기 위해 17일(현지 시각) 샌디에이고 노스아일랜드 기지를 출발했다. 미국은 항모 행선지를 '인도·태평양'이라고 밝혔지만 7함대 작전구역인 서태평양 해상과 남중국해를 번갈아 가며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루스벨트호 항모 전단(戰團)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요격 능력을 갖춘 '베이스라인7'을 최초 탑재한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핑크니함(DDG-91)과 러셀함(DDG-59), 폴헤밀턴(DDG-60) 구축함과 대지 공격용 토마호크를 탑재한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 '벙커힐함(CG-52)'등이 포함됐다. 스튜 베이커 항모 전투단 사령관은 루스벨트 항모전단이 '유연한 억제력 옵션'과 함께 '전방에서의 가시적 존재감'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그 어떤 임무도 즉시 수행할 수 있는 전투자산이라고 했다.

동태평양을 관할하는 3함대 소속인 CVN-71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3월에  도 7함대 작전구역으로 이동해 임무를 수행했었다. 2017년 11월에는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VN-76), 니미츠호(CVN-68)와 함께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연합훈련을 하며 북한에 대해 고강도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번에 CVN-71이 7함대 작전구역에 배치된다면 이 구역에는 일본 요코스카항을 모항으로 하는 레이건호 등 항모 2척이 활동을 하게 된다.

(조선일보 1월19일 박정엽 기자)

[navy story]

영국병 고친 포클랜드 전쟁 다시보기

  신년 벽두부터 심각한 질문을 던져본다. ‘만일 독도를 일본이 점령하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북한이 백령도를 점령하면 싸워서 다시 빼앗을 건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 벌어질 경우 우리 정부에 대비책은 있는지 궁금해서다. 역사에는 ‘만일’이 없다지만 정치에는 ‘만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만일’이라는 가정하에 예상 가능한 온갖 위기에 대한 대비책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필자가 던진 ‘만일’을 가정한 질문에 대한 답은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벌어졌던 포클랜드전쟁을 통해 구할 수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영국은 포클랜드전쟁의 승전을 계기로 위기를 호기로 삼아 깊은 영국병(英國病·British Disease)을 고치고 국가 부흥의 쾌거까지 이루었다. 당시 영국의 승전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평소 각종 위기에 대한 철저한 사전 대비와 외국 침략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응한 것이 승전의 기초였다.        

포클랜드섬의 충돌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는 남대서양 영국령 포클랜드섬을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군인 1만명을 동원해 점령했다. 영국은 즉각 대응해서 단 3일 만에 출병을 했고, 결국 74일 만에 아르헨티나군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고 섬을 탈환했다.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480㎞, 영국에서는 1만3000㎞ 떨어진 우리나라 전라남도 크기(1만2200㎢)의 섬이다. 인구 1820명, 40만마리의 양들이 사는 이 조그만 외딴섬을 놓고 양국은 74일간 전투를 벌여 아르헨티나군 649명 전사에 1657명 부상, 영국군 255명 전사에 775명 부상이라는 피해를 입었다.      사실 포클랜드섬은 전쟁을 하면서까지 노릴 가치는 전혀 없는 그야말로 황량한 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33년 영국이 섬을 차지한 이후 아르헨티나는 계속해서 영유권을 주장해 영국과의 사이에는 항상 긴장이 있었다. 1982년 전쟁 이전에도 양국 사이에는 이 섬을 놓고 계속 협상이 있어왔다. 당시 아르헨티나가 군사를 동원한 이유는 레오폴도 갈티에리 장군이 이끌던 독재 군사정권이 경제난과 정치위기에 처한 끝에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려 국면 전환을 해보자는 이유가 컸다. 포클랜드섬(아르헨티나 말로는 말비나스섬)을 빼앗음으로써 국민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자는 목적이었다.      당시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사태 발생 즉시 바로 전시내각을 구성하고 포클랜드섬 주변 해역 320㎞를 전쟁수역으로 선포했다. 아르헨티나군의 침공이 벌어진 지 딱 3일 뒤인 4월 5일에는 영국 전함 100여척이 차례로 군항을 떠나기 시작했다. 선단은 25일 만에 도착해 4월 30일 첫 전투가 시작되었다. 대처 총리는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의회에 달려가서 “이런 침략은 부스러기 하나의 정당성도 없고 한 조각의 합법성도 없다(It has not a shred of justification and not a scrap of legality)”고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포클랜드 주민들은 영국인이고 영국인으로 살기를 원한다. 그들의 염원을 우리가 저버릴 수 없고 저버려서도 안 된다. 우리는 최대한 가까운 시일 내에 섬을 되찾아 그들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살게 해주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면서 국토 수복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포클랜드전쟁은 영국으로서는 2차 대전 이후 자국 영토에 대한 첫 침공이었으니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당시 야당이던 노동당 당수 마이클 푸트도 전적으로 대처 의견에 지지를 보냈다. 물론 영국 내에서도 아무런 효용 가치가 없는 작은 섬을 위한 출병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다. 보수당 중진 중 한 명이 의회에서 대놓고 “전투도 시작하기 전 우리는 포클랜드를 잃어버렸다”고 선언할 정도로 반대 의견이 있었다. 영국의 최고 우방 미국의 전쟁 상황 분석도 영국에 불리했다. 영국 입장에서 포클랜드전쟁은 패전 확률이 승전 확률보다 훨씬 더 높았다. 오랜 항해와 긴 병참 길이, 겨울로 들어가는 기후, 공중 엄호 능력 부족, 부족한 장비 등 영국의 승전 가능성은 정말 낮았다. 뭔가 하나만 잘못되어도 패전할 가능성이 짙었다.        

 “그날 밤 우리는 정말 몰랐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일단 단호하게 전투선단을 출동시켜 전쟁에 응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중재로 아르헨티나와 협상에 들어갔다. 그 결과 외무장관 프랜시스 핌이 아르헨티나와 합의한 안을 대처에게 보여줬는데 대처는 일거에 이를 파기해버렸다. 대처의 표현으로는 중재안이 “우리의 완전 항복(compete sell-out) 문서” “결국 아르헨티나에 섬을 넘겨주는 안”이라는 것이었다. 실제 핌 외무장관은 당시 미국의 입장을 받아들여 이 중재안을 만들었는데 당시 미국은 ‘영국이 만족할 만한 군사적인 해결책을 얻어낼 능력은 의심스럽고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영국을 향한 국제 지지가 금방 사라질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당시 핌 장관은 대처에게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승전으로 얻는 소득을 비교하면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 던져주는 대가는 소소하다”고 권했다. 결국 포클랜드를 현실적인 계산을 해서 냉정하게 포기하자는 권유였는데 어찌 보면 당시로선 지극히 합리적인 건의였다.      

  2012년 포클랜드전쟁 30년 뒤 공개된 서류에 의하면 대처도 당시 엄청난 걱정을 했다. 전투가 승리로 끝난 지 한 달 뒤 열린 ‘포클랜드전쟁 평가위원회’에서의 발언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대처는 “3월 31일 이미 아르헨티나의 침공이 임박하다는 첩보 보고를 받았는데 내 생애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절박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날 밤 우리가 포클랜드를 다시 탈환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정말 아무도. 우리는 몰랐었다. 정말 우리는 몰랐었다.(That night no-one could tell me whether we could retake the Falklands - no-one. We did not know - we did not know.)”      결국 혼자서 결정을 내려야 했던 위기의 순간에 지도자의 어려움과 고독함을 토로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침공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영국군 출군 후 바로 사퇴한 전직 외무장관 캐링턴 경도 아르헨티나가 그런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평가위원회에서 증언했다. 궁지에 몰려 다른 선택이 없었던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의 비정상적인 판단과 결정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말이다. 비합리적인 사람들의 생각을 합리적인 사람들이 읽을 수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아르헨티나도 당시 제대로 준비를 한 상태에서 침공한 것은 아니었다. 거의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예컨대 남반구의 4월은 겨울이 시작하는 시점인데도 1만명을 동원하면서 장기 주둔할 숙소도 준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식량도, 군복도 제대로 없었다. 아르헨티나 군대는 전투기간 동안 거의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전투를 했다. 모든 면에서 영국군보다 유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패전한 가장 큰 이유를 전문가들은 저하된 장병들의 사기에서 찾는다. 전투 준비도 제대로 안되고, 전투할 의욕도 없는 군인들을 갑자기 겨울이 닥쳐오는 외딴섬으로 밀어넣는 짓은 정상적인 국가라면 하지 않을 일이었다는 말이다.아르헨티나가 도발한 이유      아르헨티나가 전쟁을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영국이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포클랜드를 점령하면 최고로 악화됐던 영국의 당시 정치·경제 상황으로 미뤄 절대 군사적으로는 반응하지 않으리라고 오판했다. 아르헨티나로서는 이런 오판을 할 만했다. 1981년 영국은 남대서양의 유일한 작전 전함이었던 앤듀어런스호를 철수시켰는데, 이것도 아르헨티나의 오판을 부른 요소 중 하나다. 전쟁 전 5년간 영국은 포클랜드섬에 대한 특별한 의지 표현을 한 적이 전혀 없었다. 이런 영국의 모호한 태도가 아르헨티나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단 착오를 하게끔 만들었다. 아르헨티나의 또 다른 중대한 판단 착오는 미국이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돕지는 못해도 최소한 중립을 지킬 걸로 오해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재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바로 영국 편으로 돌아섰다. 아르헨티나의 패전에는 이런 미국의 태도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략가들은 지적한다.      

  영국 정부가 비상사태를 예상하지 못하고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영국 국방부는 아르헨티나의 공격이 있기 딱 1주일 전인 3월 26일 아르헨티나의 전면 공격에 대한 격퇴 계획안을 대처에게 제출했다. 이에 대해 대처는 “비상대책안은 항상 만들어야 하는 것이 진리이지만 우리가 그걸 만들자마자 일이 터졌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런 비상대책안이 있었기에 영국은 침공 3일 만에 전투선단을 바로 투입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막상 군인들을 실은 전함들이 출항하기 시작하자 당초 전쟁을 반대하던 사람들마저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평소 애국심에 냉담했던 사람들마저 여왕과 국가가 어쩌고 하면서 감격해했다. 매번 함정들이 항구를 나서면 사람들이 몰려 나와 유니언잭을 흔들고 감격해서 울기도 했다. 대처를 비난하던 사람들도 대처가 단호하고 과감하게 응전을 하자 칭찬으로 돌아섰다.     

  시작부터 끝까지 포클랜드전쟁은 영국인의 관심 한가운데 있었다. 출정하던 날 아침 여론조사에 따르면, 88%의 영국인이 ‘섬 주민을 도와야 한다’고 했고, 70%는 ‘필요하다면 아르헨티나 전함을 침몰시켜야 한다’고 했다. 또 41%는 ‘정부는 바로 공격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2주 후 여론조사 결과는 더 극적으로 바뀌었다. 영국인의 3분의 1이 ‘아르헨티나 본토를 공습해야 한다’고까지 답했고, 심지어 20%는 ‘아르헨티나 본국에 침공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의 전 국민이 대처의 포클랜드전쟁 수행을 지지한 셈이다.      

  사실 영국은 당시 최악의 상태여서 전쟁을 벌일 상황이 도저히 아니었다. 1979년 총선에서 노동당 정부로부터 정권을 뺏은 후 4년 차를 맞고 있던 대처의 보수당 정권은 중증 영국병과 악전고투 중이었다. 당시 언론의 표현대로 영국은 극심한 경제불황의 한복판에서 ‘지치고, 갈라지고, 불행한 국가’였다. 특히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고로 가라앉고 있었다. 실업률은 12.5%(2019년 10월은 3.8%)에 달했고 실업자는 300만명(2019년 10월은 128만명)을 넘었다. 수많은 공장은 불황과 노동조합 파업으로 문을 닫았다. 1981년 북아일랜드 독립운동 수감자 10명이 단식투쟁으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져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주도의 테러가 영국 본토로 번져 민심도 흉흉했다. 보수당은 집권당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에서 사회자유당 연합과 노동당에 밀려 지지율 3위의 신세였다. 당시 대처 정부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인기 없는 정권으로 다음 총선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전망이 나왔다.        

전쟁의 승리는 대처의 승리     

당시 영국인들도 1982년 이전 10년간 짙어진 영국병으로 이미 희망을 잃은 지 오래였다. 산업기반은 다 무너져 더 무너질 것도 없었고 ‘날이 갈수록 더 가난해지는 나라’ ‘유럽 국가들마저 무시하는 나라’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였다. 오죽했으면 포클랜드 침공 직후 한 영국 언론이 ‘수치(羞恥)의 정점을 찍었다. 왜소한 영국의 더할 나위 없는 확인(the crowning humiliation, a crushing confirmation of Britain’s insignificance)’이라는 논평까지 냈을까. 그야말로 포클랜드전쟁은 영국에는 거의 설상가상의 재앙이었다. 포클랜드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영국이 결국 대영제국의 마지막을 ‘완벽하게’ 창피스럽게 장식하고 끝낸다는 예상도 많았다.     

  하지만 영국은 최악의 상태에서 벌어진 포클랜드전쟁에서 예상과 달리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전투 시작 한 달도 안돼 영국 군인들의 영웅적인 전투와 아르헨티나군의 작전 실패로 인해 아르헨티나의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1982년 6월 14일 포클랜드 수도 스탠리 주둔 아르헨티나군 여단장이 영국군에 항복하면서 종전이 됐다. 영국 역사학자들은 만일 영국이 포클랜드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포클랜드전쟁을 통해 영국은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에서 영국을 포클랜드전쟁 이전과 이후로 가르는 역사학자도 있다. 한 역사 웹사이트는 ‘1982년 남대서양에서의 영국 승리는 제국과 산업기반과 사기마저 잃어버린 나라에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The British victory in the South Atlantic in 1982 was a transformative moment for a nation that had lost its empire, its industrial base and its mojo)’라고 표현했다.     

  확실하게 승전 이후 영국은 바뀌기 시작했다. 한 유명 언론인이 “그동안 너무 많은 실패만 보도해서 지치고 있었는데 이제 성공을 말하려니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러나 신이 난다”라고 할 정도였다. 영국 신문 스탠더드지는 ‘위대함이 영국에 다시 돌아왔다(The Great is back in Britain)’면서 ‘영국 국명(Great Britain)이 다시 제 이름을 찾았다’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승전은 대처의 정치적 승리이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차 대전 승전 이후 나는 한번도 노동당 아닌 당을 찍은 적이 없지만 대처는 이제 보수당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와 같은 서민층 출신이다. 그녀는 영웅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대처 측근들도 대처 칭찬으로 입이 아플 정도였다. “한번 결정되자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Once a decision was reached she did not look back)” “전쟁 기간 동안 대처는 재임 중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는 등 찬사가 이어졌다.     

  이런 승기를 놓칠 대처도 아니었다. 전쟁 승리의 열기가 가라앉을 때쯤인 1983년 1월 8일 대처는 5일 일정으로 포클랜드를 ‘영웅 자격’으로 방문해서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자신의 2기 정권을 위한 총선이 열리기 딱 5개월 전이었다. 포클랜드섬에 주둔하는 군인들을 위문하고 주민들을 만난다는 이유였지만, 전쟁 승리의 기억을 다시 유권자들에게 불러일으키려는 속셈이었다. 실제 대처는 그 여세를 몰아 총선에서 이전 의석보다 무려 38석 많은 397석을 얻는 대승을 거두었다. 반면 노동당은 209석을 얻어 1916년 이후 최악의 참패를 맛보았다.        

최고의 위기를 부흥의 기회로     

대처 정부는 총선 승리를 기반으로 이후 두 번의 총선에서 더 승리하면서 영국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의회 과반수(325석)보다 72석이나 더 많은 의석을 가진 대처가 추진하는 정책을 야당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적자 국영기업 민영화, 적자 탄광 폐쇄, 퍼주기 식의 사회복지제도 개혁, 공공서비스 개혁, 노동조합 개혁, 금융제도 개방, 법인세 및 소득세 인하, 공공예산 지출 삭감, 공공서민주택 사유화 등 국론분열이 보통 심각하지 않을 정책들을 노동조합과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포클랜드전쟁 승리를 통해 지도력을 인정받은 대처는 여론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거의 모든 정책을 거침없이 실행했다. 대처로서는 포클랜드전쟁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이렇게 영국은 포클랜드전쟁이라는 국가 최고의 위기를 국가 부흥의 기회로 만들었다. 그 비결은 평소 모든 위기에 대비해 국가적 준비를 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토 침해는 협상 대상도 아니고 실지회복만이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국정 철학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응한 정치인의 지도력을 믿고 힘을 실어준 국민들이 있었다. 이렇게 전쟁을 피하지 않고 승전으로 이끈 국민이기에 ‘해가 지지 않는 제국, 패전해 보지 않은 제국(Never Sunset Empire, Never Defeated Empire)’이라는 말을 한때 들었던 것 같다. 

(주간조선 1월15일,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navy movie]

미드웨이

해군장교는 필히 보아야 하는 영화 

    해군장교라면 필히 보아야 할 영화 ! 필사즉생(必死即生)의 정수를 보여주는 영화 !해군OCS 동문들에게 강추합니다.

1977년도 미드웨이를 본 사람도 다시 보면 또 다른 느낌 !

 

싱크로 100%의 실감나는 전투씬 압권<미드웨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이를 재현하는 방법에 심혈을 기울인다. 미드웨이 해전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건 물론 단 '5분' 만에 미국과 일본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인 순간을 박진감 넘치게 표현한다. 전쟁영화가 지닌 블록버스터의 매력과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감동을 통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2020년도 영화 미드웨이는 전투씬에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활용됐는데 컴퓨터그래픽 없이 실사촬영한1977년도 미드웨이 보다 더 실전같은 느낌이 났다.  2차대전 당시 막강한 일본의 해군력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게되는 역사의 아이로니를 볼 수 있고, 전투지휘부의 순간 순간 판단 실수로 전세가 역전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 실제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로 인해 일본은 미국에 역전 당하고, 결국은 패망하게 된다.    

  < The Battle of Midway(2011) >의 저자 크레이그 시몬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의 4편 '미드웨이 해전' 편에서 당시의 전투에 대해 이렇게 코멘트했다. "1942년 6월 4일 10시 25분,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을 이기고 있었다. 5분 뒤 전투의 승기는 완전히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역사상 그 어떤 때에도 이보다 더 빠르게 역사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사건은 없었다." 이 언급에서 알 수 있듯 '미드웨이 해전'은 미국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인 전투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블록버스터의 제왕이자 '물량' 측면에서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결정했을 때 관객들이 기대감을 품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투모로우> <2012> 등 만드는 작품마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진주만에서 이어지는 미드웨이의 역사에 주목한다.

  앞서 '진주만 사건'이 2001년 마이클 베이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어쩌면 후속편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NAVYOCS MAGAZINE  편집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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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시크릿

밀리터리 시크릿|유용원 지음|플래닛미디어|424쪽

  북·중·러는 밀착하는데 미·일과 갈등하는 한국

김영삼 정부 이후 여섯 정권 27년간 최장수 국방부 출입기자, 국내 최대 군사 웹사이트(누적 방문자 3억9600만명), 유튜브(1억뷰), 페이스북(팔로어 5만2000명) 등 7개 채널을 운영하는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가 우리의 군사·국방·외교·안보·방위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우리 안보 환경은 심상치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악화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패권 경쟁에 돌입했고, 일본은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러시아는 1953년 정  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 북·중·러는 밀착하는 반면, 한국은 미·일과 긴장 및 갈등을 벌이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부분을 중심으로 비대칭 전략과 전술, 무기 체계를 발전시키고 북한의 신형 미사일에 대해서도 방어 위주가 아니라 공세적인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일보와 주간조선에 쓴 핫이슈 리포트를 모았다.(조선일보 1월18일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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