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정]

70기 박동혁 前 대우조선해양 부사장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지속 가능성" 신문기고

   70기 동기회 회장인 박동혁 전 대우조선해양 부사장이 국제신문에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지속 가능성" 제목으로 기고했다.

“1592년 3월 5일, 좌의정 유성룡이 편지와 증손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라는 책을 보내왔다. 이 책을 보니 수전, 육전과 화공법 등에 관한 전술을 일일이 설명했는데, 참으로 만고에 뛰어난 이론이다.” 임진왜란 발발 달포 전 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다. 유성룡이 병법서를 보냈고, 그 전술을 읽고 만고에 뛰어나다고 즉각 평가한 점이 눈에 띈다. 나의 장점을 적의 단점에 더하는 지기(知己)지피(知彼)와 병법 연구, 훈련은 연전연승의 핵심이었다. 

  조선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저성장 기조와 세계시장 전망에 대한 회의적 측면, 환경 규제와 에너지 혁신, 국제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과 기대감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 조선산업 생태계마저 훼손돼 시장과 경쟁구도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다. 

  생태계의 지속성은 적정규모 유지와 다양성에 달렸다. 환경 변화에 대응해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의 쏠림과 과잉 현상을 견제하는 자기조절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유형·무형 구성요소의 상호작용으로 다양한 협력 형태와 방어시스템을 형성해 생태계 내부로 던져진 위험을 극복해야 한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둘러싼 환경과 자연의 법칙은 결코 인자롭지 않다. 적자생존은 냉엄한 기준으로 개체들의 삶과 죽음을 판가름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산업 생태계를 구축했지만 내부 순환은 원활하지 못했다. 건강·안정성·균형을 유지하고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려면, 혁신을 통한 경쟁력으로 발전 에너지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은 지속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한계기업은 도태되어야 한다. 적자생존의 원칙이며 생태계가 가진 자정 능력이다.

  현재 국내 대형 조선 3사는 구조조정과 인수합병과정의 여파 속에도 모자란 일감 확보를 위해 박차를 가하면서 미래를 위한 기술 개발과 협력 체계 준비에 힘을 쏟고 있지만, 중소 조선소들은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시장 상황은 기대와 관망, L자형 침체에 대한 우려가 혼재하는 가운데, 기술혁명의 우듬지가 어디를 향할 것인지, 시장 니즈의 봇물은 어디서부터 터질 것인지, 돌아가는 룰렛 테이블의 주사위를 지켜보는 듯한 긴장감이 팽배하다. 

  조선산업도 4차산업 기술변혁의 태풍권 안에 들어선 형국이다. EU 및 한·중·일 조선소와 기자재업체, IT 업체, 물류업체 등은 다양한 협업을 통해 기술 혁신과 변화의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한 무한경쟁에 돌입해 있다. 그 영역은 다양하다. LNG운반, LNG벙커링, LNG추진선, 전기추진선, 무인자율운항 목표의 스마트선박과 운영시스템,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기반의 스마트조선소, 북극항로의 Arctic Class LNG운반선, Container(컨테이너) 선박 개발, 환경규제 극복과 선박추진에너지기술 최적화, 4차 산업 기반의 선박기자재 등이다.  

  기술 변혁과 시장 변화가 맞아떨어지기까지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시기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지속성과 생명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며 부동의 동인을 깨닫는 것이다.

  바로, 적정규모와 다양성 유지, 끊임없는 에너지 대사, 항상성, 자극에 대한 반응, 적응력, 치유력이다. 조선산업 생태계의 속성과 치유 방법을 잘 아는 전문 의사가 필요한 때이다. 

  기술은 필요한 현장에서 가치를 발할 때 인정받고 경제성을 가지며, 혁신과 발전 동력을 얻는다. 기술 보유자끼리의 협업은 공급자의 시각이라 실패하기 십상이다. 기술 수요자와 함께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고 개선하고 혁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조선산업은 자본 기술 노동 집약산업이며, 축적의 힘이 절대적이면서도, 동일한 반복을 허락하지 않는 복잡성과 통합의 기술이 핵심이다. 미래의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조선기술인력, 사람이 중요한 이유다. 조선업 지속성의 관건은 신기술 선도를 위한 인재 양성과 저변의 다양한 기존 기술과 경험이다. 기존 기술시장 심화와 확대를 위해서는 자국 건조의 니즈와 본질을 살핀 후 세계 현장으로 나가 조선 기술의 힘과 가치를 펼치는 데 땀을 할애해야 한다.

  선박 건조의 기초부터 응용기술은 물론, 각양각색 제조문화와 사람들의 관습, 설비와 환경 특성에 맞추는 생산기술의 무형자산을 자국 건조를 원하는 국가의 현지에 뿌리내리고 꽃피울 수 있다면, 가히 2세대에 걸친 조선기술로 우리의 경제영토를 확장하고 상생의 현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강점인 기술과 힘을 상대가 필요한 곳에 쏟아붓는 지기(知己)지피(知彼)의 전술, 병법(영업전략) 연구, 끊임없는 기술 훈련이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 비결이었다. 

(국제신문 1월7일 박동혁 前 대우조선해양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