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COLUMN] 
한반도 안전핀이 빠졌다 ?
우리만 지키는 군사합의는 안보 자해행위

요즘 뜨거운 키워드인 ‘9·19군사합의’는 정식 용어가 아니다. 공식 문서를 보면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라고 돼 있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채택한 ‘판문점 선언’의 여러 부속물 중 하나로 그해 9월 19일 체결된 것이 ‘9·19군사합의’라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이 ‘뿌리’고 9·19 군사합의는 ‘곁가지’라는 얘기다.
‘판문점 선언’은 김정은이 비핵화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걸 견인하기 위해 종전 선언, 남북 교류 확대 등 여러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게 판문점 선언의 제1조 제3항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다. 정부는 선언 140일 만인 9월 14일 개성공단 기존 건물에 100억원을 투입해 지상 4층, 지하 1층짜리 사무소를 열었다. 남북 관리들이 상주하며 일할 공간을 탄생시켰다. ‘판문점 선언’의 상징물이다.하지만 이 상징물은 2020년 6월 16일 두 돌도 되지 않아 폭파돼 잿더미가 됐다. 김여정의 지시였다. 사무소는 일종의 외교 공관으로 간주됐기 때문에 이를 파괴한다는 건 비상식적이었다. 폭파의 이유는 대북 전단 ‘삐라’였다. 김여정은 폭파 12일 전인 6월 4일 담화를 내고 “(한국이 대북 전단 관련)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하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단 완전 철거가 될지 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삐라’는 사무소 폭파의 작은 이유일 뿐, 큰 맥락에서 북한은 이미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의 수모로 더 이상 ‘판문점 선언 이행’ 같은 걸 할 마음을 싹 접은 상태였다. ‘하노이 노딜’ 이후 ‘삶은 소대가리가 앙천대소’ ‘특등 머저리’ ‘오지랖 넓은 중재자’ 같은 원색적 비난이 문재인 정부에 작정하듯 쏟아져 나온 것이 그런 이유이다. 그 흐름에서 트집을 하나씩 잡으며 행동으로 옮긴 것 중 하나가 ‘삐라’고 ‘사무소 폭파’였다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벌써 이때부터 사문화됐고, 이에 따라 그 하위 문서인 9·19 합의의 운명도 다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걸 최근까지 머리맡에 붙여 놓고 지켜왔다.얼마 전 정부가 9·19 합의의 일부분을 효력 정지하고, 이에 북한이 합의 전면 파기 선언을 하자 일각에서 “한반도 안전핀이 빠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어불성설이다. 9·19 합의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지난 5년간 3600여 차례나 어길 정도로 ‘안전핀’으로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다. 
안전핀으로서는 유엔정전협정이 지난 70년간 역할을 하고 있다. 정전협정이 우리가 자유 평화 통일이 될 때 뺄 수 있는 유일한 안전핀인 것이다. 
북한은 9·19합의를 했든 안 했든 그 이전이고 이후고 전략적 필요에 따라 도발해 왔다. 여든 야든 이제는 9·19 논쟁으로 괜한 국력 낭비를 하기보다는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로 무언가를 꾸미는 북한에 어떻게 맞설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조선일보 11월 27일 노석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