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S PEOPLE]   

52기 박상은 명예회장

죽산조봉암농지개혁기념관 건립위원회 발족


52기 박상은 명예회장(한국학술연구원 이사장, 전 국회의원)은 강화 지역 인사들이 참여하는 '죽산조봉암농지개혁기념관건립위원회'를 발족했다. 인천일보는 박상은 명예회장의 "죽산과 농지개혁"주제 기고문을 3회에 걸쳐 게재했다. 다음은 인천일보에 게재된 기고문이다.

1959년 7월31일 강화가 낳고 인천이 키운 죽산 조봉암의 사형이 집행됐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에서 대법원 형확정 하루 만에 문명국에서 있을 수 없는 정치재판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죽산의 죄명은 간첩죄였다. 2심에서 무기징역이었으나, 재심청구에서 같은 대법관이 맡은 대법원의 합의부 심리는 판결문 정리도 하지 않은 채 30분 만에 사형 판결로 끝났다.

오랫동안의 강요된 침묵은 1998년 국회와 1999년 향리 강화 문화회관에서 깨졌다. 2009년 여당대표 박상은(한나라당)과 야당대표 원혜영(민주당) 의원의 재심청구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어 2011년 1월 대법원의 간첩죄 무죄판결로 죽산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공산주의 간첩죄에서 벗어나 명예는 회복되었으나 아직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남아 있다. 죽산의 항일독립운동 공로를 폄하하며, 친일세력이라는 틀에 여전히 가두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조봉암은 1946년 5월에 서신을 통해서 박헌영 및 남로당과 결별을 결단하게 된다. 곧이어 1946년 6월23일 좌익이 주도한 시민대회에서 공산당 반대 성명서를 배포하였다.

제1공화국의 자유당과 이후에도 죽산 죽이기에 공모한 제 세력들은 조봉암 선생을 공산당으로 매도하고 간첩으로 홍보했다. 죽산 개인의 정치일정은 20세기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는 한반도 역사의 질곡이라는 구조 속에서 배태된 불운과 불행일 수밖에 없다. 특히 1952년과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죽산의 선거 경합성은 이승만 후보에게 위협감을 주었다. 이승만 후보에 대한 정치 대항마로서의 죽산의 선전은 그의 정치생명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명 그 자체를 앞당기게 하였다.

죽산은 북한과 공산주의 세력들에게서 변절자라는 낙인을 무릅쓰며, 1948년 5·10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그리고 농지개혁의 이슈를 해결하려는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서 초대 농림부 장관에 임명된다. 농업경영의 합리화와 농촌의 민주화를 촉진키 위하여 토지 소유권을 경작자에게 이양, 말 그대로 경작하는 사람의 보호에 중점을 둔 개혁조치가 바로 농지개혁이다.

죽산의 농지개혁을 위한 정책의 핵심은 소작농의 비율을 줄이고 자영농의 비중을 늘리면서, 이와 연동하여 산업자본을 증진하는 것이었다. 죽산의 농지개혁를 통해 70% 소작농이 토지주가 되었다. 소작농들은 가난의 사슬을 끊고 이후 당당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했다. 지주는 토지를 팔아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며 우리나라 산업화의 초석이 되었다.

1949년 6월21일 농지개혁법이 공포됐다. 농지개혁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악의 고리 지주·소작인 관계도 함께 청산됐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제헌 헌법에 경자유전 원칙을 담고(현행 헌법 121조 경자유전의 원칙 선언), 1949년 6월21일 농지개혁법을 제정했다. 1950년 6·25전쟁의 발발 바로 석 달 전에 시행하였다.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시간에 성공한 사례가 두 나라인데 한국과 대만이다.

공산화된 북한이나 중국과는 차별화되는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도록 당시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을 안정시키려는 미국의 역할이 있었다. 북한이 1946년 3월 5일 농지개혁을 단행 공산주의의 우월의 선전수단으로 활용하여 남한 내 사상적, 정치적 불안을 가중하고 있었으므로, 하루빨리 농민의 숙원인 농지개혁을 전면적으로 단행하여 정치적 불안정을 완전히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진지하게 요구되고 있었다. 수탈적인 소작제도 폐지하고, 안정적 식량확보, 국토환경보존, 공산주의 이념 확산 차단. 지주에게 종속된 소작인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만민 평등 세상 만들려는 깊은 뜻이 기저에 있었다. 농지개혁 제도의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봉건 노예국가에서 근대 민주화 국가체제로 전환이 가능하였다.

/박상은 죽산 조봉암 농지개혁기념관 건립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