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Y HISTORY]

미 해군 창설의 역사 (3)

해군이 영토확장을 주도하다


    

1898년 결국 미서전쟁(Spanish American War)이 발발하면서 착실히 준비해온 미국의 해군력은 빛을 발했다. 루즈벨트 차관보는 이미 전쟁 시작 이전에 듀이(George Dewey) 제독에게 전쟁을 준비시켜, 아시아전대는 개전 이전에 홍콩을 출항하여 마닐라베이 해전에서 스페인 함대에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다. 한편 카리브 전선에서는 전력을 북대서양전대와 유격전대(Flying Squadron)로 나누어 쿠바 상륙부대의 보호와 스페인 함대의 견제 임무를 수행했고, 특히 산티에고 해전에서 적 주력을 격파함으로써 완벽한 승리를 장식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마지막 식민지인 쿠바를 붙잡고 있던 스페인을 아메리카 대륙에서 축출했고, 태평양에는 괌과 필리핀이라는 교두보를 확보했다.

현대화된 미 해군 함대는 구형함 위주의 스페인 해군을 제압하면서 승리를 굳혔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 해군은 현대화에 실패하여 과거 무적함대의 영광은 사라진 지 오래였기에 현대적 유럽해군과 승부할 경우는 그 결과는 미지수 였다. 또한 미 해군은 자국 군항에서 무려 7천 해리나 떨어진 태평양에서 해전을 펼치는 위험함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해군력을 더욱 신중하게 건설해야 한다는 교훈이 도출되었다. 그리고 미 해군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전력건설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1901년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이었다.

해군차관보를 지내면서 해군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루즈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야심찬 해군력 증강사업이 지속되었다. <출처: US National Archives>

이미 해군차관으로서 해군력을 국력으로 바꾼 바 있었던 루즈벨트는 야심찬 해군증강을 기획하여 전함을 공격적으로 증강했다. 또한 조직개편도 꾸준히 착수하여 1902년 북대서양전대는 북대서양 함대로, 아시아전대는 아시아함대로 격상되었다. 1905년에는 유럽함대가 북대서양함대에 편입되었고, 1907년에는 남대서양전대까지 흡수하면서 북대서양함대는 대서양함대로 개편되었다. 이와 함께 태평양전대와 아시아함대 일부가 통합되어 태평양함대가 새롭게 창설되었다. 이에 따라 취임 당시 세계 6위였던 미해군 전력은 무려 2위까지 상승하여 미국은 영국 다음으로 강력한 해군력을 확보했다.


도쿄만에 입항하는 대백색함대. 

미국은 대백색함대의 세계 순항에서 마지막으로 일본에 기항하면서 강력한 해군력을 과시하면서 기고만장한 일본에게 경고를 보냈다. <출처: Public Domain>

루즈벨트는 강력한 해군력을 강한 국력으로 바꾸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부드럽게 말하되 몽둥이는 큰 걸 들고 다니면 멀리 갈 수 있다.(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 you will go far.)”라는 자신의 말처럼 루즈벨트는 해군력을 마음껏 활용한 포함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특히 중미지역에 운하를 만들면 해군력을 활용하는 전략적 역량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니카라과 운하건설안을 중지시키고 프랑스로부터 파나마 지역을 구매했다. 당시 이 지역을 통치던 콜롬비아 정부에 대항하여 파나마 반군을 지원하여 독립시키고, 해군력을 파견하여 콜롬비아의 위협을 막으면서 장래 파나마 운하의 기반을 다졌다. 또한 최신 전함 16척으로 구성된 대백색함대(Great White Fleet)를 창설하여 1907년부터 전세계를 순항하면서 미 해군력을 과시하도록 했다. 특히 대백색함대는 1908년 10월 일본 요코하마에 기항하면서, 러일전쟁 승리 이후 기고만장해졌던 일본에게 경고를 보냈다.

해군력이 국력에 끼치는 영향

이렇듯 미 해군은 창설 초기부터 절대로 강한 군대가 아니었다. 국제교역의 중요성과 해군력의 상관관계를 몰랐던 정치인들의 눈에는 해군력이란 그저 예산의 낭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유럽이란 시장에 목숨을 걸고 있던 신흥공업국가로서 정체성을 깨달은 미국은 부지불식간에 해군력을 키우고 있었다. 더욱이 유럽으로부터 신대륙의 자유로운 권리를 보장하고 자유롭게 세계무역을 영유하기 위해서는 해군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특히 미국도 제국주의 경쟁에 뒤늦게 참여하면서 해군력을 급격히 증강시켰다. 특히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는 자국의 최신 전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전세계로 파견하면서 마음껏 자국의 해군력을 과시했다. 이를 통하여 미국은 제국주의 시대의 한 축을 차지하는 열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추후 1차대전으로 영국의 영향력이 쇠퇴해가자 미국의 해군력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분명 해군력은 손쉽게 건설할 수 있는 군사력이 아니며,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세계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려는 국가라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힘이라는 점을 미 해군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