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S PEOPLE]
72기 한경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외교 전문가 육성 및 네트워크 구축 강조"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마음씨는 좋은데 말발은 약한 시골 아저씨’ 같아요. 사도 광산처럼 문제가 터지면 거세게 반발하지만, 평상시엔 조용하거든요. 다른 나라가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면 지혜롭고 말발 있는 어른 역할을 맡아야 해요.”
2월22일 한경구(OCS 72기) 유네스코(UNESCO)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최근 일본 정부가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 “불나면 끄러 가는 ‘소방 외교’로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일 갈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조선인 강제 노역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행태가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일 문제로 끌고 가면 다른 나라는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고, 한쪽 편을 들어야 한다면 힘 있는 일본 편에 설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일본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비판 여론을 조성해 넓게 포위망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일본 내부에서도 ‘이러면 망신당한다’는 소리가 나오게 해야 한다”고 했다.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현재 개발도상국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돕는 워크숍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나라가 한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또한 개발도상국에도 이렇게 좋은 유산이 많은데 굳이 논란 많은 일본 유산을 등재해야 하느냐는 논리를 펼칠 수도 있고요.”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잘 알려졌지만 교육·과학·문화를 총괄하는 초대형 유엔 기구다. 유엔 기구 중에서 유일하게 회원국에 유네스코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국가위원회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0년 유네스코에 가입한 지 10여 일 만에 6·25 전쟁이 발발했고, 1954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위원회를 설립했다. 한 총장은 “유네스코가 여러 나라에 원조했지만 한국처럼 모범적인 국가는 없었다”고 했다. “유네스코는 전쟁 통에도 초등학교 교과서 인쇄 공장을 설립하도록 도움을 줬어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유네스코가 원조한 교과서로 공부한 가난한 나라의 소년이 사무총장이 됐다’며 전 세계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죠.”
한 총장은 외무고시 합격 후 외무부 북미담당관실에서 일하다 일본 동경대·미국 하버드대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이후 국민대 국제학부,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를 지내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분과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그는 “외무부에서 일할 때는 유엔(UN) 가입도 못했던 시절이라 늘 퇴짜맞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달라진 한국 위상을 느낀다”면서 “지난해 유네스코 총회에 참석했을 때 영국·독일을 비롯해 한국 사무총장을 만나고 싶어하는 나라가 많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유네스코는 강대국들의 소프트파워 각축장으로도 불린다. 지난해 기준 중국과 일본의 유네스코 분담금 분담률이 15%, 11%로 1·2위를 차지하고 있어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한 총장은 “분담금은 적게 내도 지적·도덕적 힘을 가진 나라도 있다”면서 “식민 지배와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한국은 정론을 말할 수 있는 도덕적 우위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외교력을 키우기 위해선 국제 무대에서 활약할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주요 국제회의에 꼭 시니어·주니어 전문가를 세트로 데려와요. 사적인 인간관계나 식사 자리, 복도나 화장실에서 하는 이야기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한 총장은 “전문가를 육성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후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인류 공동체를 위해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담론을 선도하는 능력을 갖춰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