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신기한 동네 이태원 꼭대기

‘높은 한남동’

  

 서울 한남동은 넓다.

 당신이 아는 ‘대세 한남동’은 어디인가.

 큰길가 대사관길과 갤러리길을 지나 한발짝만 안으로

 들어와도 골목골목 작은 한남동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다.

 자기 작업에 몰두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공방과 작은 가게

 들이다. 골목에서 노니는 그들의 창의성, 잉여력,

 열정이 한남동 문화를 만들었다.

 

 한남동은 모순의 동네다. 이태원역에서 산꼭대기

 판자촌을 따라 오르면 가난한 예술가들이 공동체촌을

 닮은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높은 한남동이다.

 광고기획사 제일기획 뒤편에서 한남오거리 쪽으로

 내려가는 낮은 한남동에는 자기 가게를 낸 디자이너들이

 실용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높은 한남동에는 잉여력이 풍성하고 낮은 한남동에선

 네트워크가 붐빈다. 지금 한남동이 끓는다.

 한남동 골목길에 온라인마케팅사를 차린 박진수씨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새로운 것들은 변방에서 시작된

 다’는 괴테의 말이 있지만 한남동 골목길은 지금

 새로운 것들이 시작되기에 아주 좋은 상태다.”

 

 에너지가 끓는 거리, 높은 한남동과 낮은 한남동 골목길

 을 돌아보았다.

 이상한 동네다. 1982년 가게문을 열어 아직도 장작으로

 난로를 때는 한진이발소며 오래된 가전제품이 산더미처

 럼 쌓인 전파상들 사이로 커피전문점과 공방, 문신 가게

 들이 막 문을 열었다. 40년 된 닭발집 ‘숙이네’ 옆집은

 파키스탄 사람이 하는 인도음식점이다. 낮에는 동네

 토박이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슬렁거리고 밤에는

 흑인, 무슬림, 기묘한 복장의 젊은 예술가들이 돌연

 나타나는 곳.

 

 한국 이슬람 중앙성원에서 시작해 한남동 도깨비시장에

 이르는 우사단 10길이다.보광동과 한남동을 가르는

 우사단 10길이 달라진 것은 지난해부터다.

 이슬람 사원을 등지고 오른쪽을 보면 사원앞카페벗이

 2012년 8월 문을 열었다. 우사단에 들어온 활동가와

 예술가 8~10명이 틈틈이 이곳에 모이면서 일을 벌일

 궁리가 생겼다.

 

 ‘우사단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그들은 올해 3월부터

 10월까지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에 이태원 계단장이라는

 벼룩시장을 열었다. 지난 11일 계단장이 열릴 때면

 다른 동네에서 온 방문객들을 데리고 한남동 산동네를

 도는 ‘동동투어’를 진행하는 이영동(25)씨와 함께

 우사단 길을 걸었다.

 사원앞카페벗을 지나면 까맣게 칠해진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이태원 클럽에서 활동하는 디제이

 소울캐스트의 음반 작업실이면서 디제이 수업이 열리는

 곳이다. 이영동씨는 “이 동네는 이태원에서 일하는 사람

 들의 베드타운”이라고 설명한다. 10곳이 넘는 오래된

 미용실들은 이태원 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만지거나 근처 트랜스젠더 바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성별을 바꾸는 단장을 하는 곳이다. 동네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미용실 거리’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이 동네

 미용실은 솜씨가 다 뛰어나다. 그러나 창문이 가려지거

 나 간판이 없는 미용실은 아는 사람들끼리만 가는 곳이

 라 외부 사람들이 들어가선 안 된다고 했다.

 

 홍대 앞이나 강남을 놔두고 굳이 이 산동네로 올라온

 예술가들은 싼 월세만큼이나 성적 다양성과 여러 인종이

 섞여드는 이런 분위기에 끌렸단다.이곳은 이태원에서

 가장 높은 길이다. 오른쪽 보광동을 내려다보면 재개발을

 반대하는 집들이 내건 빨간 깃발이 펄럭인다.

 왼쪽은 한남동으로 가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한쪽은 지하, 반대편으로만 햇살이 들어오는 3~4층

 건물마다 싼 월세를 찾아 예술가들이 들어왔다.

 눈에 띄는 작업실만 14곳. 게이 커뮤니티, 재개발이

 중단된 지역, 상이용사촌이 혼재한 거리가 새로운

 문화적 충돌을 자양분 삼아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슬람 성원에서 이태원역으로 이어지는 큰길에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하다. 우사단길은 몇발짝 차이

 인데도 싼값에 사뭇 다른 분위기의 가게들이다.

 숙이네 분식, 이슬람 스타일의 식당 파크 인디아,

 커피전문점 엔트로피, 챔프 등이 그렇다. 지난 4월 강남

 에서 커피전문점을 하는 하동준씨는 이 거리에 가게를

 얻었다. 처음엔 강남매장에 가져갈 원두를 볶는 창고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하루종일 이곳에만

 있다. 강남에선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선 난로를 하나 들여와도 동네 사람들이 다

 들어와 한마디씩 한다. 음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낡은 건물만큼이나 동네 분위기도 1980년대에서

 멈춰버린 듯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장재민씨는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일일이 다 그려서 한남동 산꼭대기 지도를 그렸다.

 주민과 함께 하는 벼룩시장도 열고 ‘한남동 패션잡지’도

 만들고 있다. “이태원에 여러 예술가들의 공동체가 들어

 왔지만 결이 다 다르다. 우리는 주민과 접점을 추구한다.”

 

 

 타투숍을 하는 그라피티 작가 후디니는 가게에서

 지난 14일부터 ‘교환전’을 시작했다. 작가 60명이

 가게에 작품을 걸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돈을 내는 대신 심부름을 해주겠다거나 될 때까지 소개팅

 을 해주겠다는 둥 자신의 노동력을 바치는 제안을 해야

 한다. 작가가 응하면 교환이 성립된다.

 한남동 산동네에서 예술가와 가게 주인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차릴지도 모른다.

 

 이영동씨는 “이 거리엔 오래된 매력이 있다.

 시간의 추억과 흐름이 한동네에서 보여진다.

 여기서 우리는 그 이야기를 이어가며 새로운 것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계단장과 동동투어는 2014년 3월부터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