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남도의 봄볕이 대지의 겨울잠을 깨운다. 섬 가득 꽃 내음 흩날리는 거제도로 떠난 봄 마중 여행.

장승포에서 구조라와 학동을 거치며 거제를 시계방향으로 내려오는 드라이브 코스에서 바라본 풍경.
코끝에 전해오는 바람에 꽃향기가 섞이고, 두툼한 겉옷이 거추장스러워지는, 봄이다. 거제도의 봄은 그렇게 꽃바람을 타고 온다. 파도가 굽이치는 해안도로를 달리면 붉은 동백 너머로 비타민 향이 나는 수선화가 흔들거린다. 학생들이 떠난 학교에는 아이들 웃음소리 같은 매화가 꽃을 피웠다. 봄이 왔음을 알아차릴 때쯤이면 이미 저만치 앞서가는 성급한 봄을 맞으러 지금 남쪽으로 떠난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는 부산과 통영에서 들어오는 다리가 놓인 이후 이제 더는 가기 힘든 섬이 아니다. 바람의 언덕, 신선대, 자글자글 파도가 노래하는 몽돌해변을 거닐고 회 한 접시 먹고 돌아오는 일정으로는 아쉽다. 화려한 부산과 번잡해진 통영 사이에서 스치듯 지나치던 거제도엔 숨어 있는 여행지가 많다. 이름 모를 누군가 바다를 향해 쌓아 올린 하얀 성과 창밖으로 바다가 앞마당처럼 펼쳐지는 카페가 구석구석 숨어 있다. 봄볕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거닐어본 거제도 여행.
TRAVEL SPOT
DAY 1

장승포에서 구조라와 학동을 거치며 거제를 시계방향으로 내려오는 드라이브 코스에서 바라본 풍경.
공곶이–구조라리
꽃 피는 거제예구마을의 끄트머리에 보물처럼 숨어 있는 공곶이는 8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한평생 삽과 곡괭이로만 일군 거제의 마지막 8경이다. 하늘을 덮은 200m의 동백 터널을 따라 내려오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수선화가 넘실거리는 비밀의 화원이 펼쳐진다. 선을 보러 거제에 왔다가 공곶이에 반한 할아버지는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땅을 사서 수선화를 심어 현재 4만5천여 평의 자연 농원을 일구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데는 20분여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만 하면 된다. 입장료가 없는 만큼 이렇다 할 편의 시설도 없다. 관광지로 조성된 곳이 아니라 그저 꽃을 사랑하는 노부부가 일군 낙원이니 봄기운 가득 만끽하고 돌아올 때 쓰레기는 되가져오는 센스를 보여주자.

알록달록 벽화길이 이어지는 구조라리.
구조라리에 있는 작은 폐교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춘당매 4그루가 나란히 운동장을 지키고 있다. 매년 입춘 즈음에 잎이 없는 마른 가지에서 꽃들이 팝콘처럼 터져 나온다. 구조라리는 한쪽은 항구, 한쪽은 하얀 백사장을 양옆으로 가진 작은 어촌이다.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진 마을 골목을 지나 한여름에도 서늘해 온갖 무서운 이야기가 댓잎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대나무 숲을 따라 올라가면 구조라성에 다다른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언덕에 오르면 모래시계처럼 허리가 잘록한 구조라 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거제도의 명물 바람의 언덕과 언덕을 지키는 풍차.
해안도로–학동 몽돌해변–바람의 언덕, 신선대
바다를 달려 바람을 느끼는 시간거제도는 굴곡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라 바닷가를 달리는 길은 구불구불 커브의 연속이다. 장승포에서 시작해 구조라와 학동을 차례로 거치며 거제를 시계 방향으로 내려오는 14번 국도는 거제도 여행의 핵심이다. 봄에는 붉은 동백이, 여름에는 푸른 수국이 도로 양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거제도에는 몽돌해변이 여럿 있다. 그중 학동 몽돌해변이 길이 1.2km로 가장 긴 몽돌해변이다. 파도가 밀려오고 나갈 때마다 경쾌하게 자글거리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흥겹다.
몽돌해변은 가만히 앉아 파도 소리를 감상하기에도 좋고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도 그만이다. 해송이 커다란 가지를 터널처럼 바다 쪽으로 뻗으며 자란 곳을 시작으로 해안 절벽과 어우러지는 산책로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 몽돌해변을 지나 조금 더 달리면 바람도 쉬다 가는 바람의 언덕과 신선이 놀다 갔다는 신선대가 있다. 나무로 된 산책로를 따라 조금만 오르면 이국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풍차가 있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바람의 언덕과 거의 붙어 있는 신선대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신선이 놀다 갔을 넓은 바위 위에 서서 신선의 되어보거나 신선대 전망대에 올라 신선대와 바다 풍경을 내려다보면 된다.
DAY 2

아침 7시 활기 넘치는 외포항 위판장 너머로 일출 풍경이 내다 보인다.
외포항 – 매미성
거제의 삶이 묻어나는 속살외포항은 우리나라 대구 물량의 30%를 차지하는 곳이지만 생각보다 규모는 작다. 아침 7시에 외포항 수협 위판장에 가면 활기 넘치는 경매 현장을 볼 수 있다. 겨울엔 대구, 봄에는 도다리가 경매사들의 암호 같은 수신호로 거래된다. 대구는 겨울이 제철이지만 바닷바람에 적당히 말라 수분이 조금 빠지면 더 차지고 감칠맛이 난다.
겨울과 봄이 맞닿은 계절에 방문한다면 적당히 마른 대구와 도다리쑥국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외포항에서 조금 위쪽에 있는 시방마을에는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은 매미성이 숨어 있다. 2003년 태풍 매미가 소중히 가꾼 농작물을 휩쓸어 가버리자 태풍으로부터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힘으로 담을 쌓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것이 웅장한 성이 되었다. 외국의 어느 바닷가에 있는 수도성을 옮겨놓은 듯한 매미성은 관광지도 아니며 아직 완공되지도 않았지만 꼭 한번 들러보면 좋을 이국적인 명소다.
칠천도 - 지심도
나박나박 조용히 봄을 걷는 길섬 안의 섬 칠천도는 거제도 주민들이 북적북적한 해수욕장을 피해 조용히 휴가를 즐기는 작은 섬이다. 차가 많지 않고 1시간 30분가량 바다를 보며 달리기 딱 좋은 코스라 자전거를 타려고 찾는 사람이 많다. 2013년 개관한 칠천량해전공원은 언덕 위에 위치해 바다 위 양식장과 건너편 거제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번잡한 곳을 피해 거제도의 비경을 즐기고 싶다면 칠천도가 제격이다.
장승포항에서 배로 20분이면 닿는 지심도는 섬의 60% 이상이 동백으로 뒤덮여 있어 동백섬이라고도 불린다. 배에서 내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을 오르면 마을을 지나고 시야가 확 트이는 활주로가 나오는데 그 활주로부터 해안 전망대로 향하는 길의 동백 터널이 가장 아름답다. 동백은 1월부터 4월까지 피고 지고를 반복하다 기온이 오르는 3월에 만개한다. 겨우내 선연한 붉은빛을 머금고 있다가 화려하게 피어난 동백은 나무에서 시들지 않고 고고하게 그대로 툭 떨어져 붉은 꽃길을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