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없다’는 말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사는 요즘 사람들.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여유가 생기면 못 견디며 괴로워하는 이중적 태도까지 보인다. 시간의 늪에 빠져버린 당신에게 필요한 타임푸어 솔루션.

 

 

1. 워킹푸어, 하우스푸어에 이어 타임푸어족 등장

“바쁘다, 바빠!” 도처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육아를 하는 사람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은퇴 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모두 저마다의 사정으로 ‘바쁨’을 호소한다. 올 초 SBS는 기획 보도를 통해 ‘시간 빈곤 국가’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그렸다.

 

먹고 자고 씻는 것처럼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데 쓰는 시간은 일주일 168시간 가운데 약 90시간. 그러면 78시간이 남는데,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는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고, 통근·통학 시간은 가장 길다. 가사일, 육아에 하루 1시간만 써도 이미 시간은 마이너스 상태. 결국 먹고 자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어 아침은 거르기 일쑤고 수면 시간은 OECD 최저 수준이다. 이렇게 너무 바빠서 생존에 필수적인 시간마저 줄일 수밖에 없는 이른바 ‘시간 빈곤’에 빠진 사람이 노동인구의 42%나 된다.

SBS 8뉴스 2015년 2월 18일 보도

 

워킹푸어, 하우스푸어에 이어 이제 타임푸어까지 등장한 21세기 대한민국. 타임푸어족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데도 잠과 식사 등 인간의 기본욕구에 드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때는 바쁘게 사는 것이 능력의 척도요, 부의 척도였지만 이제는 돈도 없는데 시간까지 없다는 박탈감에 삶의 만족도가 한없이 떨어지고 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 걸까?

 

2. 쏟아지는 정보 속 이벤트 사회

우선 우리 주위부터 찬찬히 돌아보자. 내 신경을 앗아가고, 내 시간을 좀먹는 것들이 도처에 포진했음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비교하면 오늘날만큼 인간이 수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살았던 적은 없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1시간에 1000개가 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세계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 언제나 연락을 취할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쇼핑과 예약 등이 당장 가능하다. <뉴욕타임스> 하루치가 17세기 영국인이 평생 접한 양보다 더 많은 정보를 싣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기기의 탄생 이후 이 현상들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대사회를 ‘이벤트 사회(Ereignisgesellschaft)’라고 부른다. 이벤트 사회는 감각적 자극이 차고 넘치지만, 그것을 향유할 시간은 부족한 사회다. 왜냐하면 자극을 받아들일 두뇌가 새로운 정보를 임의적으로 빠르게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는 이미 인간의 두뇌를 넘어서고 있다. 수천 년 동안 ‘변화’라는 것은 통제와 평가가 가능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초고속으로, 기하급수적으로, 한계치로 치닫고 있다. 글로벌 정보, 시스템의 복잡성, 변화의 신속성, 이메일의 양, 인터넷 페이지의 총량, 광고 양, 대학교육비 등이 급격히 증가하는 혼란들을 생각해보자. 그러나 문제는 자극들이 어떤 속도로 쏟아지는지를 사람들이 더 이상 지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기엔 많은 이들이 이러한 것들에 이미 익숙해졌다.

 

3. 번아웃 증후군 유발하는 속도 게임

어떤 속도가 한번 관철되면 그 속도가 다시 느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부적인 강압보다도 우리 뇌가 빠른 속도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 중 바로 이런 뇌의 속도감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계속 속도를 높여야 하는 미션에 도전하는 이들 게임들은 미션 수행 시 특정한 자극을 주고, 사람의 뇌는 서서히 그 속도에 중독되고 만다.

 

문제는 이런 중독 외에도 자기 삶의 속도를 전염시키는 데에 있다. 마라토너에게는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다. 조직 안의 사람들은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속도를 끌어올린다. 한번 시작된 속도 경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불붙게 된다. 10년 전, 20년 전의 우리 사회를 떠올려보자. 그때도 많은 사람이 바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보다 느린 속도로 일들을 잘도 해결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우리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나간 이 속도 전염성은 대개의 경우 조직에 속한 개인이 자발적으로 멈출 때까지, 즉 적응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갈 때까지 계속된다. 대개 개인의 ‘번아웃 증후군’으로 끝나는 이 속도 게임은 우리 사회 곳곳에 타임푸어를 양산하며 오늘도 ‘성장과 발전, 책임과 의무’라는 이름으로 기세등등하게 활약 중이다.

 

*번아웃 증후군 기력을 소진한 상태.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인 피로를 느끼며 무기력증과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