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7일 오전 10시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민주주의자 김근태! 3주기 추모식”에서 낭독된
이인영 의원의 추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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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선배님께!
선배님 가신지 3년, 선배님의 빈 자리를 서성이는 사람들의
공허한 그 마음속에 다시 선배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공정한 계약의 사슬에 묶여 울고 있는 을(乙)들의 눈물 속에
당신의 고통이 있고, 일자리를 배회하는 젊은 미생(未生)들의
슬픔 위에 당신의 고난이 있고, 세월호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어린 꽃송이들에 묶였을 당신의 고단한 넋이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가신지 3년이 지났지만 선배님 없는 대한민국은 아직 그대로
입니다. 2012년을 점령하지 못한 못난 후배들이 서있는 대한
민국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선배님이 그토록 염원했던 세상은, 사람이 돈보다 먼저이고
노동이 자본만큼 존귀하며 생명이 이윤보다 우선하는, 아름다
운 참세상은 여전히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칼바람 부는 첨탑에 오르지 않고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세상
에 분노하며 어제, 원식이 형은 씨엔엠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노숙농성장 주변에 함께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강추위가
몰아치는 거리로 내몰린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은 다시 또 굴뚝 위로 올라가야 했고,
정리해고, 규제완화, 외주화, 민영화, 비정규직화, 부자감세,
복지축소, FTA, 금융자유화, 오히려 선배님이 맞서 싸웠던
눈 먼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강도를 높여 우리 삶을 몰아치
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싸웠고, 온 몸으로 항거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깊은 예의를 지켰던 선배님이 다시 또 그리운
이유입니다.
선배님이 시작한 ‘모두진술’, 조직동원 금권정치를 끝내버린
양심선언, 정당정치의 새로운 이정표 국민경선제/선배님으로
인해 민주주의자 김근태로 인해 우리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겨울공화국입니다.
권력기관이 선거에 개입하고, 불통의 독재는 십상시, 7인회로
신권부를 이루고, 정당은 재판으로 해산당하는 대한민국은
아직도 유신5공화국입니다.
소리쳐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우리의 울림은 당신에 비해 작았
고, 아직도 우리는 선배님이 서있던 자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
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를 그리워만 할 뿐 김근태를
부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먼저 말하기보다 남의 말을 먼저 듣고, 개인보다는
조직을, 부분보다는 전체를, 명망보다는 신의를 앞세운 김근태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빠르기보다 바르기를, 말하기 보다는
행동하기를 추구했던 선배님의 정신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배님이 떠난 지 다시 3년, 오늘도 저는 선배님 앞에서 암울
한 시대만 탓하고 있습니다. 1년, 2년 시간이 더해질수록 보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한 대한
민국, 따뜻한 시장경제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을 얘기하지 못하
고 있습니다. 평화로 나아가 통일의 문을 여는 일은 아예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했습니다.
고백컨대 죄송할 뿐입니다. 남은 자의 부족함으로 앞선 선배님
을 그리워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무치는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이제는 또 전진해 보렵니다. 바스라진 영혼을 다시 일으
켜 세웠던 선배님의 참 용기로, 진실의 눈으로 정확히 세상을
바라보고 정확한 해답을 찾아 실천하겠습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 혼자만 잘사는 세상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중단없이 전진하겠습니다.
사회적 가치가 존중받는 함께 사는 공동체 만들기에 전진하겠
습니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듯,
타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예의가 살아 숨쉬는 김근태의 정신이 살아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나아가겠습니다.
김근태 선배님!
선배님은 언제나 시대가 원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선배님의
이상과 일생을 그 안에 두었습니다. 정의롭지 않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고, 정직하지 않은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배님은 진정한 혁명가였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꼭 그만큼 선배님의 후배임이
자랑스러운 진실한 우리가 되겠습니다. 멋 부리는 지도자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간직한 사람, 김근태의 길을 다시 가겠습니다.
이제 김근태가 다시 보입니다.
2014년 12월 27일
이인영